중천왕 즉위 교서 벽비 中川王 卽位敎書 壁碑
의의
1. 246년 동천왕은 패전으로 양위하고 스스로 불내성에서 자살하였다.
2. 왕을 따라 신하가 죽는 순장이 유행하였다.
3. 동천왕과 그 신하들이 묻힌 시원은 만주 심양시 북쪽 철령시 남쪽의 시하柴河로 고려된다.
246년 동천왕은 신하들과 자살하기 위해
망명에서 돌아와 국도를 높이고 불내성에 살신 치성을 드렸다.
흘계를 보내어 읍도를 새로 세우도록 하고 246년 10월에 양위한다.
(선왕은) 현도와 비류를 다스리는 가영동국리였던 동명왕(고두막한)의 뒤를 이어 안태천세예악하고
고구려백제왕은 백성을 위했던 천부조 추모왕을 대신하였다.
가을 8월에 보기 이천 병사로 위나라장수 관구검과 혁현령에서 싸워 수천리를 공격했고 항복한 적이 수천이었다.
동천왕의 유신들이 동천왕을 따라 자살하여 왕릉을 시체로 가렸으니,
이 충절을 천지에 기록하여 이름을 높이고
(시원에) 비석을 세워서 백세후 백성들에게 알린다.
[中川王 卽位 敎書 壁碑]
正始武侵 宮百殊 固諫 慾鎩 還亡命 存其固都 誠不耐城
遣訖繼創邑都 護殊百位麓酋 委台七年十月
繼明王 封假寧東國吏玄菟沸流 安泰天歲禮樂
世百濟高麗殊 代天府祖 鄒牟王 以城民之意
秋八月步騎二千戰 儉 䚂峴岭 攻數千里 降士數千
國宮 前臣 高伏儉鎩 城北王盲
記天地之中銘存永世 隨登愿此碑永立
以傳百世紹示百殊城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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