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일본사

사반대왕, 효소천황 사대주신이 되다

단군천사짱 2006. 1. 4. 22:34
 

구수대왕의 아들 사반대왕은 귀국하여 백제대왕이 되었다가 다시 일본으로 가서 효소천황이 되었다.

그의 두 아들은 효안천황과 효원천황이며 그중 효원천황의 딸이 왜여왕으로 등극한 일여다.

 

제 5세 천황으로 기록된 효소천황孝昭天皇(202~268)은 미마쯔히코카에시네御眞津日子詞惠志泥命이라고 하는데 효소천황의 능은 하압신사下鴨神社에 붙어있다.


하압신사下鴨神社는 야쯔미와야에코토시로누시신사鴨都味波八重事代主命神社라고도 한다. 즉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를 모시는 곳이다.

코토시로누시를 모시는 여러 압신사鴨神社를 고려하면 코토시로누시도 역시 압신鴨神이다. 이를 카모대신鴨神이라고도 읽는다.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는 구수대왕, 즉 대국주신大國主神과, 칸야타데히메神屋盾比賣命의 아들이며 효소천황孝昭天皇(202~268)이다.

사대주신事代主神이 이즈모出雲에 살다가 대화大和에 살다가 백제로 돌아가서 238년(삼국유사)에 사반대왕沙伴大王이 되었다가 백제 고이대왕古爾大王에게 밀려나서 다시 일본으로 왔다. 

대화大和 동쪽 미시마三嶋의 세야타타라勢夜陀多羅比賣를 통하여 이스케요리伊須須岐比賣命(219~273)를 낳았는데, 훗날 신무천황의 황후가 되었다.

이스케요리히메의 비문이 효소천황릉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효소천황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이스케요리히메의 부친이라는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가 효소천황이었던 것을 확정할 수 있다.

효소천황은 신무천황 황후인 딸 이스케요리히메를 믿고 다시 돌아와서 갈성葛城의 와키카미궁掖上宮에 살았다.


[주] 효소천황의 이름은 카에-시네(詞惠志泥, 香殖稻)라고 한다.

“카에”는 우리말 “껴”에 해당하는데 그의 궁성 이름은 와키가미掖上宮이고

와키掖의 동사動詞가 “끼다.(옆에)”이다.

그러면 우리식으로 “껴시네”가 되는데 사실은 “끼다”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켜시네”, 즉 “혀시네”가 원어原語로서, 불을 “밝히다照昭”의 우리말 고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우리말로는 “혀시네”왕이고 한자로는 조소왕照昭王이 된다.

조소왕이 한자어로 개작되어 효소왕孝昭王이 된 것이다.

그가 묻힌 곳은 “밝다산博多山”이다.

따라서 그의 우리말 이름은 “밝혀시네”왕이이다.

이는 신라왕 박혁거세와 비슷한데 부여어로 고려된다. 박혁거세가 부여에서 왔다는 주장이 [한단고기]에 실려있다.

부여의 영역이었던 내몽고 서요하의 천산 지역에서는 지금도 남자 무당은 박博이라고 하며, 여자무당을 이도칸伊都干이라 부르는데 굿을 하여 구사치병駒邪治病한다.


[주] [위지왜인전]에서 일본 소국의 관직에 히노모리卑奴母離가 있다.

히노모리卑奴母離는 한자어漢字語로 백두白頭다.

백두白頭라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백우白牛의 쇠머리牛首之名라고 [규원사화揆園史話/단군기檀君紀/구례舊禮] 중에 나와있다. 이 백두白頭를 천산天山의 신단수神檀樹에 걸어놓고 요나라 황제가 직접 천제天際를 지냈는데 이는 [요사遼史/예기禮記]에도 기록되어 있다.


[주] [위지왜인전]에서 여러 소국 왕의 칭호는 히꾸卑狗인데 이는 천황의 경칭인 일자日子의 발음 히꼬彦와 같은 발음이다.

소국의 부왕은 히노모리卑奴母離라고 했다. [단군세기/가륵기]에서 소시모리 素尸毛犁는 소머리 즉 우수牛首다. 즉 모리毛犁는 우리말 머리首다. 모리母離, 모지牟遲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히노모리는 우리말로 흰-머리이니 백수다.

4세기까지 고구려왕을 우리말로 백수百殊라고 불렀었고, 이후로 현재까지 남자 무당을 박수博首라고 불러왔다. 

일본에서 박博을 “히로”라고도 읽으니 박수博首가 히노모리卑奴母離로 된 것이다. 후에 일본에서는 히노모리卑奴母離의 모리로 표현되던 머리 수首를 지킬 수守로 바꾸어서 지방왕을 국수國守라고도 하였다.


[주] 사대주신(202~268)의 아들 효원천황을 사본왕沙本王(228~273)이라 했고, 그 여동생을 사하지히메沙波遲比賣(249~272)라고 했는데, 사하지히메가 가야계 수인천황과 결혼하여 가야에 갔다가 파혼하고 돌아와서, 사대주신의 도성稻城으로 돌아왔다. 그후 수인천황의 부하에 의해서 272년에 도성稻城이 불타고 사하지히메가 죽는다.

효소천황孝昭天皇의 이름이 도천황(觀松彦香殖-稻天皇)이니 그의 성이 도성稻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