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오녀 히미코 왜여왕과 주몽검, 손자 니니기
이즈모의 팔중궁에서 탈출한 세오녀는 구주로 피난하여서
구주에 여인왕국 야마타이국을 세우고 히미코 여왕이 된다.
왜여왕 히미코는 신라와 교류하고 가야에 자신과 초고대왕의 아들을 아메노오시호미를 보내 결혼시키고 손자 알알이를 얻어서 구주의 왕으로 데려오니,
오늘날 천손이라 추앙되는 알알이의 구주 강림신화로 전해온다.
초고대왕은 시마네현嶋根縣의 이즈모出雲을 정복하고서, 160년에 대화大和 수진국秀眞國의 왜여왕인 세오녀細烏女 히미코卑彌呼 여왕을 사로잡아 일본 열도를 차지했다.
초고대왕이 히미코의 여동생 와카히稚日女命(113~160년)를 160년에 죽였는데, 바로 그 160년이 초고대왕이 일본 구주를 정복한 해다. 초고대왕은 히미코 여왕 등 8신녀들을 정복하여서 다섯 왕자와 세 공주를 얻었다.
히미코 여왕 자신의 왕자는 아메노오시호미天之忍穗耳命 왕자로서 니니기邇邇藝(174~220?) 왕자를 낳았고, 그는 최초로 일본 천황이 된 신무천황神武天皇(194~256)을 낳았다.
오시호미의 아들 니니기邇邇藝는 우리말로 알알이다.
천손 니니기를 가야로부터 구주로 인도했던 이시호리도히메伊斯許理度賣命(141~174)의 고분에서 밝혀진 연대로 보아서, 니니기의 출생은 174년경이며, 오시호미가 태어난 것은 히미코가 정복당한 1년후인 161년경이 된다.
초고대왕의 일본생 둘째 왕자는 첫째 신녀인 모치코持子 마수희麻須姫가 낳은 아메노호히天之菩卑命 왕자로서 출운신出雲臣 등 시마네현 귀족의 선조가 되었다.
셋째 왕자는 아키코秋子・하야아키쯔速開津姫 신녀가 낳은 아마쯔히꼬네天之津根命로서 후꾸오카의 자성국조茨城國造 등의 선조가 되었다.
넷째 왕자는 미치코道子・오오미야大宮姫가 낳은 이꾸쯔히꼬네活津日子根命이고,
다섯째 왕자는 아야코紋子・토요히메豊姫가 낳은 쿠마노쿠스비熊野久須毘命이었다. 이 때 5왕자의 순서는 신녀의 순서다.
히미코 여왕은 출운 팔중궁의 포로 신세에서 탈출하여 구주九州에 새로운 왜국倭國인 여왕국을 세웠다. 야마대국邪馬壹國이라고 한다.
[고사기]에서 초고대왕은 보검인 쯔무가이대도都牟刈大刀를 규수의 왜여왕 히미코에게 보내주었다.
대구大邱 평리동坪里洞과 비산동飛山洞에서 출토된 청동검과 비교된다.
고구려백제 공동시조인 고주몽을 일본에서 쯔모왕都牟王(=都慕王)이라고 했으므로, 초고대왕은 일본에 고주몽신사를 세워 고주몽을 제사 지내도록 주몽왕검朱蒙王劍을 보내준 것이며, 이는 히미코에게 왜국 왕권을 수여한 것이기도 하다.
이후 주몽왕검은 일본의 삼보三寶 중에 첫째였다. 이 주몽왕검의 형식은 한국형韓國形 세형동검細形銅劍이다.
히미코여왕은 초고대왕과 자신의 아들 오시호미天之忍穗耳命가 일본의 대화大和를 통치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첫째 신녀의 아들 아메노호히天菩比神를 야마대국의 사자로서 백제 본토의 구수대왕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복형인 구수대왕으로부터 영지를 받고 이즈모出雲에 정착하였다.
히미코여왕은 그후 다시 아메쓰쿠니다마天津國玉命(122~178)의 아들 아메노와카히코天若日子를 구수대왕에게 보냈는데, 역시 구수대왕의 사위가 되어서 돌아와 구주에 영토를 받았다.
히미코여왕은 다시 세번째로 다케미카쯔찌建御雷神(160~210년)을 아메노토리후메天鳥船命(149~206)와 함께 파견하였다.
이 다케미카즈끼는 206년경에 힘으로서 오사카에 있던 4살박이 사대주신事代主神(202~268)을 밀어냈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인지 믿기 어렵다.
사대주신事代主神은 효소천황孝昭天皇인데, 효소천황을 [고사기]에서 미마쯔히코카에시네御眞津日子詞惠志泥命라고 하였고, 그 이름의 앞머리가 미마쯔히코御眞津日子이니, [고사기]에서 구주의 다케미카쯔찌建御雷神가 굴복시킨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즈모出雲에 있던 효소천황孝昭天皇은 후퇴시켰지만 대마도對馬島, 그리고 오사카大阪인 대화大和의 백제 왕자들이 모두 굴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대화大和에는 역시 구수대왕의 아들인 의덕천황懿德天皇(180~244)이 강력하게 지키고 있었다.
히미코여왕은 큰 아들 오시호미忍穗耳를 불러 일본의 중심 오사카大阪인 대화大和에 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시호미는 가야에 가서 김수로왕의 딸과 결혼하더니 돌아오지 않고, 그 아들 니니기邇邇藝(174~220?)가 대신 강보에 싸여서 구주로 돌아왔다.
니니기는 우리말로 알알이다. [일본서기]에서는 경경저瓊瓊杵라고도 쓴다. 즉 원래 발음은 알알이邇邇藝, 뜻은 경경저瓊瓊杵인 것이다.
오시호미의 귀국을 안내한 이시호리도히메伊斯許理度賣命(141~174)의 고분으로 추정하면 강림한 때가 174년이다.
이때 니니기의 형이라고 기록된 아마노호아카리天火明命(165~210)는 오시호미의 출생년도가 161년경이므로 니니기의 형이 될 수 없다.
아마노호데天火明命(165~210)는 니니기의 형이 아니라 초고대왕의 막내아들인 우가미신宇迦美神이었고, 백제계 1대 대마도주對馬島主 불합존不合尊였으며, 동시에 단군시대 대마도주 언파불합彦波弗合 이후로 51세 대마도주(궁하문서宮下文書에 의함)였으며, 그의 다른 이름은 야마토오弥真都男王命 즉 왜남왕倭男王이다.
니니기는 히미코여왕의 손자이고, 히미코여왕의 가야계 동생벌인 대마도주 대산진신大山津神의 딸이 낳은 우가미신인 아마노호데天火明命(165~210)는 니니기와 서로 육촌간이라서 형이라고 기록했다.
불합不合은 대마도對馬島를 의미한다. 대마도는 한 개의 섬 이름이면서 실상은 두 개의 섬이다. 파도? 때문에 섬의 중간에서 아주 조금 합치지 못한 두 개의 섬이지만 실상은 하나라는 뜻이 불합不合이다. 궁하문서宮下文書에서는 불이합不二合으로도 썼다.
35세 단군 사벌 때인 bc723년에,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 웅습熊襲(=구주九州)을 평정했다고 하는데, 언파불합이 대마도 출신 장수였던 것이고, 그의 후예들이 대대로 대마도의 불합존不合尊이다.
[궁하문서宮下文書]에 기록된 51대 우가야불이합왕조宇家澗不二合須世 기록도 언파불합이후의 대마도왕조 기록이다.
초고대왕의 막내아들 아메노호아카리天火明命, 구수대왕의 아들 호데火照命, 니니기의 아들 회오리火遠理命(=火火出見) 등은 모두 우가야-대마도주-불합왕不合尊을 의미하거나 불합왕을 지냈다.
대산진신大山津神과 그 딸, 토요타마히메豊玉姬와 타마요리히메玉依姬, 타마요리히메의 아들 이쯔세五瀨命도 모두 대마도의 인물이며 대마도에 토요타마히메豊玉姬(신무천황의 첫번째 왕비)의 묘가 남아있다.
일본의 [상기上記]에서 1대 대마도주불합왕(사실은 51세 불합왕, 즉 아메노호아카리天火明)은 구수대왕인 대국주신의 권유로 대마도의 대산진신의 딸 타마요리히메玉依姬를 이즈모出雲으로 초청하여 결혼하였고 이쯔세五瀬命(184~238)를 낳았다.